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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성을 견디는 능력

현명함은 복잡성을 복잡한 채로 보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명확히 선택하는 일이다.

2026-05-23 관련 작업 · 병원 내 LLM 실습 세미나 추진

결과가 나온 뒤에는 모든 것이 쉬워 보인다.

처음부터 그렇게 했어야 했다고 말하기도 쉽다. 그때 왜 그런 판단을 했느냐고 묻기도 쉽다.

하지만 실제 결정의 순간에는 아직 결과가 없다.

그때 있는 것은 조각난 정보, 불완전한 기준, 제한된 시간, 서로 다른 이해관계다. 어떤 선택은 나중에 보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정보와 제약 안에서는 그나마 합리적인 판단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어떤 일을 돌아볼 때 지금의 정보와 당시의 정보를 분리하려고 애쓴다. 결과를 알고 난 뒤의 나는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 결정을 내리던 순간의 나는 아직 그 결과를 몰랐다.

그 간격을 잊지 않는 것. 내가 말하는 현명함은 거기에서 시작한다.

복잡성을 견디는 능력.

복잡성을 견딘다는 것은 모든 것을 애매하게 두자는 뜻이 아니다. 결정을 미루자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상황이 복잡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필요한 결정을 내리는 태도다. 내 판단의 한계를 알고, 나중에 수정될 수 있음을 받아들이면서도, 지금 해야 할 일을 선택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사람은 복잡성을 오래 견디기 어려워한다. 우리는 명쾌한 이야기를 원한다.

누가 맞았는지.
누가 틀렸는지.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빠르게 정리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욕구다. 너무 많은 변수를 계속 붙들고 있으면 피곤하다.

문제는 단순화가 도구가 아니라 세계관이 될 때 생긴다.

한 번의 결과로 과거 판단 전체를 심판하고, 한 번의 감정으로 관계 전체를 규정하고, 모순되는 정보는 버린다. 그렇게 하면 마음은 편해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이런 능력이 특히 중요해진다. 업무는 늘 불완전한 정보 위에서 진행된다. 모든 사람이 같은 정보를 갖고 있지 않고, 같은 책임을 지고 있지도 않다.

현장에 가까운 사람은 구체적인 불편을 먼저 본다. 책임을 지는 사람은 전체 제약을 먼저 본다. 실행하는 사람에게는 결정이 답답해 보일 수 있고, 판단하는 사람에게는 불만이 너무 쉽게 말해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양쪽 모두 자기 자리에서는 어느 정도 타당할 수 있다.

그래서 좋은 질문은 “누가 맞는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 어떤 정보가 부족한가.
누가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
어떤 결정은 아직 열려 있고, 어떤 결정은 이미 닫혔는가.
내가 느낀 감정과 실제 구조는 어떻게 다른가.

이런 질문을 붙드는 데에는 에너지가 든다. 말로는 누구나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만, 자존심이 걸리고 감정이 상하고 자기 판단이 틀렸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마주할 때도 그 말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실무에서 내가 자주 신뢰하게 되는 지성은 빠른 결론보다, 지금 보이는 정보와 아직 보이지 않는 정보를 구분하는 능력에 가깝다.

물론 그런 시야가 항상 편한 것은 아니다.

어떤 상황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것처럼 보일 때, 나는 곧바로 반박하기보다 그 안에서 보이는 정보와 보이지 않는 정보를 나누어 생각하려고 했다. 그 습관은 도움이 되었다. 동시에 나를 꽤 지치게 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이 능력을 잃고 싶지 않다. 다만 이제는 한 가지를 더 배우려고 한다.

복잡성을 이해하는 것과, 그 복잡성을 혼자 책임지는 것은 다르다.

모든 맥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모든 사람의 감정과 판단과 결과를 내가 감당하는 것은 다르다. 복잡성을 본다는 이유로 결정을 계속 미룰 필요도 없고, 모든 입장을 이해한다는 이유로 경계를 흐릴 필요도 없다.

복잡성을 견디는 것은 양비론이 아니다. 모든 편을 이해한다고 해서 모든 방식이 괜찮다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열어두어야 하고, 무엇을 결정해야 하며, 어디서부터는 선을 그어야 하는지 더 정확히 보기 위한 태도다.

현명함은 모든 것을 끝없이 분석하는 데 있지 않다.

충분히 본 뒤에는 결정을 내리는 데 있다. 그리고 내 몫이 아닌 것은 내려놓는 데 있다.

복잡한 세계를 복잡한 채로 볼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명확히 선택할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